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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결
내가 지금 아프다고 느낄 때 나는 내가 속한 문화의 개념으로 아픔을 인식한다. '저리다', '시리다' 등과 같이 아플 때,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인정한 개념으로 가족이나 친구들과 나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뒷골이 쑤신다", "어깨가 뻐근하다", "아랫배가 살살 아프다" 등 아무리 영어 광풍이 몰아치는 한국 사회에서도 우리는 영어로 아플 수는 없다. 그래서 고통은 사회문화적으로 인식, 소통된다. 여기서 고통이 사회문화적으로 인식, 소통된다는 것은 단지 언어학적인 부분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자극을 고통이라고 정의하는 것, 어떠한 정도의 자극을 고통의 단계로 인정하는 우리의 감각 또한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된다. - 인문의학, 인제대학교
오토바이 위에 몸을 구부리고 있는 사람은 오직 제 현재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과거나 미래로부터 단절된 한 조각 시간에 매달린다. 그는 시간의 연속에서 빠져나와 있다. 그는 엑스터시 상태에 있다. 그런 상태에서는 자신의 나이, 자신의 아내, 자신의 아이들, 자신의 근심거리 따윌 전혀 알지 못하며, 따라서 그는 두려울 게 없다, 두려움의 원천은 미래에 있고, 미래로부터 해방된 자는 아무 것도 겁날 게 없는 까닭이다. 속도는 기술 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의 형태이다. 오토바이 운전자와는 달리, 뛰어가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육체 속에 있으며, 끊임없이 자신의 물집들, 가쁜 호흡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뛰고 있을 때 그는 자신의 체중, 자신의 나이를 느끼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자신과..
오이디푸스 아아, 모든 것이 이루어졌고 모든 것이 사실이었구나! 오오 빛이여, 내가 너를 보는 것도 지금이 마지막이 되기를! 나야말로 태어나서는 안 될 사람에게서 태어나, 결혼해서는 안 될 사람과 결혼하여, 죽여서는 안 될 사람을 죽였음이라. 코러스 (좌1) 아아 그대들 죽어야 할 인간의 종족들이여, 따져 보면, 그대들의 삶은 한낱 그림자에 지나지 않도다. 그 누가 행복으로부터 행복의 허울 뒤의 몰락보다도 더 많은 것을 얻고 있는가. 그러니 내 그대의 그대의, 오오 불행한 오디푸스여, 그대의 운명을 본보기로 삼아 죽어야 할 인간들 중에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고 기리지 않으리라. -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가난은 사회적이면서 심리적인 조건이다. 인간의 실존이 단지 한 사회가 만들어 놓은 '남부럽지 않은 생활수준'에 따라 측정될 때, 그 수준을 지키지 못하는 이들은 괴로움, 고통 그리고 굴욕을 느낀다. 그것은 '정상의 삶'이라고 인정되는 모든 것에서 배제되었음을 뜻하며 또한 '기준에 미치지 못함'을 의미한다. 그 결과 자존감이 낮아지고 심지어 수치스러움이나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가난은 한 사회에서 '행복한 삶'이라고 여겨지는 기회들과 단절되고 '삶이 제공해야 하는 것'을 받지 못함을 의미한다. 소비자 사회에서 정상의 삶이란 소비자의 삶이고 소비자들은 만족과 생생한 경험의 기회들 가운데에서 선택하느라 바쁘다. 오늘날 사회의 비밀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주관적 결핍감을 개발'하는 데 있다. 사람들이 현..
비둘기는 누구에게도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 그러나 비둘기 개체군에서 매파형 돌연변이 개체가 나타났다고 가정하자. 매파형 돌연변이 개체가 비둘기와의 모든 싸움에서 승리하여 우선 유리하다. 그러나 유리한 매파의 유전자는 급속히 퍼져 매파끼리의 싸움이 시작됨으로써 돌연변이 개체도 부상을 당할 수 있다. 차라리 그들에게는 비둘기파의 공동 행위에 속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우리는 ‘비둘기파의 공동 행위’에 가담하는 것이 장기적 이익이 될 수 있음을 이해 할 능력이 있으며, 이 공동 행위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서로 논의할 능력이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낳아 준 이기적 유전자에 반항하거나, 더 필요하다면 우리를 교화한 이기적 밈에게도 반항할 힘이 있다. 순수하고 사욕 없는 이타..
인간의 본성에는 싸움을 불러일으키는 세 가지의 요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경쟁심이고, 두 번째는 소심함이며, 세 번째는 명예욕이다. 경쟁심은 인간으로 하여금 이득을 보기 위해, 소심함은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명예욕은 좋은 평판을 듣기 위해 남을 해치도록 유도한다. 경쟁심은 타인과 그 처, 자식, 가축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소심함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하기 위해, 명예욕은 자기 자신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가족, 동료, 민족, 직업 또는 이름에 간접적으로 먹칠하는 일, 비웃음, 상이한 견해뿐만 아니라 경멸의 몸짓과 같은 하찮은 일에도, 인간으로 하여금 폭력을 사용하도록 한다. 따라서 강력한 국가가 모든 이에게 두려움의 대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살아갈 때 인..
쾌락은 감관(感官)̛에 의한 쾌(快)이다. 그리고 감관을 즐겁게 하는 것을 쾌적이라고 부른다. 고통은 감관에 의한 불쾌(不快)이다. 그리고 고통을 낳는 것은 불쾌하다. 쾌락과 고통은 서로 획득과 결여(+와 0)처럼 대립해 있는 것이 아니라, 획득과 상실(+와 -)처럼 대립해 있다. 즉, 한쪽은 다른 한쪽에 대해서 모순적으로 대립할 뿐만 아니라, 상호 교환 관계로 맞서있다. 나의 현재 상태를 버리도록(그런 상태로부터 나오도록) 나를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것은 나에게 불쾌하다. 그것은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마찬가지로 그런 상태를 유지하도록(그런 상태에 남아있도록) 나를 자극하는 것은 나에게 쾌적하다. 즉, 그것은 나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끊임없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리고 이것과 결합한 감각의 교체..
프로메테우스에 관해서는 네 개의 전설이 있다. 첫번째 전설에 따르면 그는 인간을 위해 신들을 배반했기 때문에 코카서스 산에 쇠사슬로 단단히 묶였고, 신들은 독수리를 보내어 자꾸자꾸 자라나는 그의 간을 뜯어먹게 했다고 한다. 두번째 전설에 따르면 프로메테우스는 쪼아대는 부리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점점 바위 속으로 깊이 파고들었고, 결국 바위와 하나가 되었다. 세번째 전설에 따르면 수천 년이 지나 그의 배신행위는 잊혀졌다. 신들도 잊었고, 독수리도 잊었고, 그 자신도 잊었다. 네 번째 전설에 따르면 근거 없이 되어버린 일에 모두 지쳤다. 신들도 지쳤고, 독수리도 지쳤고, 상처도 지쳐서 스스로 아물었다. 남은 것은 설명되지 않는 이상한 바위산뿐이었다. 전설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 한다. 전설은 진실의 ..